근대서화

찬란했던 근대 미술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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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Calligraphy
청담 청담(靑潭 , Cheong dam)
종이에 먹(Ink on paper)
123x61cm 1971년
속성은 이씨(李氏). 속명은 순호(淳浩). 서당에 다니다가 18세에 진주제일보통학교에 입학했으며, 22세에 진주고등농림학교에 입학했다. 3·1운동 때는 만세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25세에 일본에 유학, 효고 현[兵庫縣] 송운사(松雲寺)에 들어가 아키모도 준가[秋元淳推] 밑에서 행자수업을 하며 불교를 공부했다. 다음해 귀국해 고성 옥천사(玉泉寺)에서 남규영을 은사로 수계하고 청담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서울에서 개운사(開運寺) 대원불교전문강원(大圓佛敎專門講院)에 들어가 박한영에게 사사하며 대교과(大敎科)를 마쳤다. 33세에 충청도 정혜사(定慧寺) 선원에서 안거 이후 20여 년 간 전국 각지의 선원을 돌며 수행에 열중했으며, 만공의 인가(印可)를 받았다.
8·15해방 후 1954년 이승만의 유시(諭示)를 계기로 서울 선학원(禪學院)에서 전국비구승대회를 열고 '불법에 대처승(帶處僧) 없다'라는 기치 아래 불교 정화에 주력했다. 1955년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에 취임했고 이후 해인사 주지, 도선사 주지 등을 역임했으며, 1966년 조계종 통합종단 2대 종정에 취임했다.
1968년 도선사에 호국참회원(護國懺悔院)을 건립했다. 1969년 종권 다툼에 휩싸인 종단을 염려하여 종단탈퇴를 선언하기도 했으나 1970년 주변의 간곡한 권유로 다시 총무원장을 맡기도 했다. 1971년 한국종교협의회 회장을 맡아 종교간 대화와 화해를 위해 애쓰다가 1971년 11월 입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