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서화

찬란했던 근대 미술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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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작가

진환
진환
작가명(한자) 陳瓛
생몰년 1913 ~ 1951
작가설명 본명은 진기용(陳錤用),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출생

1934년 일본 미술학교에서 양화를 공부했고, 졸업 후에 동경미술공예학원 순수미술 연구실에 입학해 2년동안 공부했으며 학원의 강사와 동경아동미술학교 주임을 맡았다.
그는 당시 화단의 등용문이었던 선전을 거부하고 신자연파협회전에 출품하는 등 실험적 활동을 펼쳤다. 신자연파협회전에서 1회전 [雪睛(설정)]으로 장려상, 4회전 [豊年樂(풍년악)]으로 협회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베를린 제 11히 국제 올림픽 예술경기전에 [군상]을 출품 입상하였는데 이 작품은 아쉽게도 화재로 유실되었다.
1943년 귀국해 무장농업학원의 원장과 초급중학교로 승격된 이후 교장을 이어 맡아 교육사업에 헌신했고, 이후 1948년 상경하여 홍익대 미술과 교수로 취임하고 다시 작품 제작에 몰두하였다. 아동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동시를 써넣은 그림책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내고, '쌍방울'이라는 동시집 발간을 서두르기도 했지만 1951년 38세의 나이로 피난도중 고향근처에서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그는 1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독자적 화풍으로 작품을 남겼다.
1983년 유작집 발간과 유작전을 가지면서 약30여점의 가벼운 스케치와 소품의 유화를 선보였다. 이 중 유화는 10점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그의 표현은 신감각의 표현주의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다.
그가 특히 즐겨 그린 소재는 '소'인데, 소는 궁극적으로 당시의 시대상황과 한민족의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는 신미술과협회의 전시회에서 독특한 회화세계를 이룬 소 주제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발표했다. 식민지치하의 어려운 시대상황에서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고집했던 그의 예술성은 그와 함께 활동했던 이쾌대나 이중섭의 작품에서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진취적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관전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민족적인 요소를 강하게 담아 냈던 작가들이 참여했던 조선신미술가협회에서 이쾌대, 이중섭, 진환은 같은 예술성을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